주말에 몰아보기

듀나의 ‘빨간머리 앤’, 박세진의 ‘소셜 패브릭’, 황효진의 ‘유리천장 깨는 여자’

2018.07.20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보는 시대다. TV 편성표 대신 케이블과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필요한 지금, ‘ize’에서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사이에 몰아서 볼 만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빨간머리 앤 시즌 2

넷플릭스 ‘빨간머리 앤’의 1시즌은 설리번이나 지브리의 ‘빨간머리 앤’과 같은 온화한 가족물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겐 거의 공포물이었다. 앤 셜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정서 불안한 아이이며, 애번리 마을 사람이 앤을 대하는 방식도 가혹하기 짝이 없다. 1시즌 후반에 가면 앤과 마을 사람들은 그럭저럭 서로에 적응하기 시작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다행스럽게도 2시즌에서 앤의 사정은 1시즌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 여전히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지만 애번리 사람들은 이 상상력 풍부한 여자아이의 존재에 익숙해졌고, 친구들도 생겼다. 하지만 원작에 충실한 시리즈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 2시즌은 1시즌보다 더 어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원작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온 1시즌과는 달리 이번 시즌에는 원작의 흔적만 여기저기에 남아 있을 뿐이다.
대신 시리즈는 원작의 캐릭터들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애번리는 그린게이블즈에 이사 온 두 사기꾼 때문에 금광열에 시달리고, 길버트는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세계로 나간다. 이 시리즈의 퀴어 프렌들리한 성향은 새로 등장한 캐릭터 콜 덕택에 더 노골적이 되었다.
원작자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이 이야기들을 봤다면 좋아했을까? 조제핀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당황하는 다이애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상관없다. 이 새 이야기 속에도 앤은 놀랄 만큼 앤이고 종종 원작의 에피소드에서보다 더 앤 같다. 원작의 품을 떠난 이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글. 듀나

패션과 함께 보내는 주말

구찌의 티셔츠나 발렌시아가의 운동화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최근 패션의 가장 큰 변화는 티셔츠, 운동화, 청바지 같은 흔한 일상복이 이끌고 있다. 특히 거리의 패션이 미치고 있는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이는 유럽의 백인이 이끌던 고급 패션을 미국의 흑인이 대체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미국의 일상복이 하이 패션을 점유해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힙합을 비롯한 젊은이들의 서브 컬처가 주류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주된 소비자가 베이비 붐 세대에서 밀레니엄 세대로 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TV와 잡지에서 인터넷과 SNS로 변한 결과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멘터리 ‘소셜 패브릭’은 티셔츠, 운동화, 청바지 등 흔한 공장 생산 옷에 본래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사람들이 어떤 스토리를 불어넣었는지 보여준다. 특히 새로운 세대가 무엇을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이런 옷이 이들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지나며 이전과는 다른 “패셔너블”이 만들어졌다.
소셜 패브릭은 12편이지만 25분짜리라 주말에 몰아본다는 기분을 느끼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과 함께 ‘프레시 드레스드’(122분)로 힙합 패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보고, ‘스니커헤드’(69분)로 지금 스트리트 패션의 기본 구조인 컬렉팅과 되팔이가 형성된 운동화 문화를 보고 나면 최근 패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 더 잘 알고 즐길 수 있다.
글. 박세진(패션 칼럼니스트)

여성들의 스탠드업 코미디

웃긴 걸 보고 싶을 때 요즘은 넷플릭스에서 여성들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찾는다. 적어도 여성 혐오적 농담이 튀어나올까 긴장해야 할 일은 거의 없으니까. 크리스텔라 알론소는 ‘유리천장 깨는 여자’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는 시대에 미국에서 살아가는 라틴계 1세대 이민자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사는 LA에서는 이민자보다 대마초가 먼저 합법화됐다는 사실을 빈정대고, 어릴 적 가난하게 살았던 자신보다 지금 유기농으로 키워지는 동물들의 삶이 훨씬 더 나은 것 같다고 자조한다. 언제나 미국 바깥으로 추방당할 위험에 놓여 있었던 어머니의 경험과 낡은 성 편견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의 삶에 애정과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빨간 뿔테 안경을 끼고 임신한 몸에 딱 달라붙는 호피 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시안 여성, 앨리 웡의 ‘성역은 없다’는 이전에 공개됐던 ‘베이비 코브라’보다 한층 더 노골적인 코미디를 보여준다. 출산 이후 여성이 겪는 몸의 변화와 육아의 고단함, 여성과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온갖 제스처까지 동원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실컷 웃고 난 후에는 레즈비언인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로 마무리할 차례다. 여성이며 성 소수자인 자신이 그동안 자학하는 코미디로 경력을 이어왔으며 이것이 여성 혐오적 구조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는 더 이상 무대에서 코미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웃음은 보약이 아니에요. 이야기로부터 치유가 되죠. 웃음은 약의 쓴맛을 중화시킬 뿐이에요. 저는 여러분이 웃음이나 증오로 하나가 되는 건 원치 않아요. 제 이야기가 전해지길 원할 뿐이죠.” 여성의 이야기가 코미디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 무대 밖의 세상에서도 제대로 퍼져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생각하게 된다.
글. 황효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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