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카페에서 여름 나기

2018.08.06
ⓒShutterstock
덥다. 한반도에서 41도라는 숫자가 가능할 줄은 몰랐다. 111년만의 더위가 하필 내가 사는 시대에 온단 말인가. 억울하지만 억울할 때가 아니다. 이 비현실적인 날씨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회사의 유일한 장점인 월급에 요즘은 냉방이라는 장점이 추가된다. 그러나 주말이라고 태양도 노는 건 아니고, 출근할 회사가 없는 사람들은 또 어쩔 건가? 돈이란 이러려고 번 것이다. 에어컨을 펑펑 틀고 집에 칩거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집은 그다지 쾌적한 장소가 아니다. 주거공간, 특히 1인 주거공간의 질이 나날이 하락 중인 한국에서 카페는 음료보다는 공간의 의미를 가진다. 나의 노동 없이도 쾌적한 공간, 예쁜 컵과 생화가 있지만 두루마리 휴지나 생수 무더기는 없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에어컨도 나온다. 하와이로 훌쩍 떠나 한 달쯤 살다 올 수 없는 사람에게 카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나 혼자 카페에서, 기왕이면 숨만 쉬는 게 아니라 즐겁게, 더 중요하게는 편안하게 보내고 싶다면 카페부터 잘 골라야 한다. 이 날씨에 살아보겠다고 이고 지고 나온 사람에게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멀리 원정 가기보다는 동네가 좋고, 기왕이면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커피가 맛있고, 음식이 맛있거나 외부 음식을 허용하고, 직원이 상냥하고, 자리가 편하고, 화장실이 청결하며, 사람이 많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물론 시원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지나치게 시원해서는 안 된다.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카페를 찾다가는 영원히 카페에 가지 못하게 된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대충 양보할 것을 정하는데, 내 경우는 한적하고 콘센트가 많다면 커피나 음식의 맛은 내려놓는 편이다. 불편하게 버티다 결국 일어서고 싶지 않다면 새로운 곳을 개척하기보다는 익숙한 곳이 최고다. 평소 찍어둔 카페가 없다면 카페 내부를 찍어 올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검색이 살길이다. 키워드는 ‘지역+조용+카페’ 혹은 ‘지역+공부+카페’ 혹은 ‘지역+콘센트+카페’다. 작은 공간보다는 큰 공간이, 개인 카페보다는 프랜차이즈가 실패 확률이 낮은데,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을지로처럼 주말이면 유령 도시가 되는 오피스 타운의 ‘스타벅스’나 ‘커피빈’이다.

아무리 명당을 골라도 ‘카페템’이 부실하면 말짱 헛일이다. 노트북이나 타블렛을 가져간다면 보조 배터리와 충전기는 필수다. 이어폰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소음에 민감하다면 아예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장만하는 것도 좋다. 추위에 약한 사람은 덮을 것이 필요한데 카디건보다는 무릎담요가 편리하다. 작고 도톰한 것보다는 얇은 재질의 큰 것을 가져가 잘 접어 무릎에 덮거나 활짝 펴서 목과 어깨를 둘둘 감는다. ‘카페복’으로는 헐렁한 긴바지나 긴치마를 추천한다. 에어컨 바람을 오래 버티려면 최소한 무릎은 덮어야 한다. 물론 원단은 시원해야 하고, 허리는 당연히 고무줄이다.

냉방병도 조심해야 한다. 카페에 일단 들어오면 안심이 되면서 여기서 영원히 살고 싶지만 두세 시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탈수가 되지 않도록 목이 마르지 않아도 수분을 계속 섭취하는데, 물을 셀프로 가져다 마실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생수를 한 병 가져가는 것도 좋다. 눈이 뻑뻑하다 싶으면 휴대전화를 잠시 내려놓는다. 빵만 먹으면 영양 불균형이니 때가 되면 제대로 된 것을 먹는다는 의미에서도 한 카페에 너무 오래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나에게 이상적인 카페의 날은 다음과 같다. 아침 댓바람부터 집을 박차고 나와 카페의 모닝 세트를 먹는다. 대부분의 카페가 아직은 한산하니 공간의 안락함보다는 맛으로 선택한다. 11시 30분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들이닥쳐 점심을 먹고, 미리 골라둔 한적한 카페로 간다. 두세 시간 후 자리를 옮기거나,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면 한 잔 더 주문한다. 5시 30분,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들이닥쳐 저녁을 먹는다. 아직 덥지만 너무하지는 않은 공기 속을 걸어 집으로 간다. 그리고 찬물로 샤워하고 새로 깐 시트에 대자로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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