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① 이것이 한국이다

2018.08.14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과 ‘신과 함께: 인과 연’의 내용이 있습니다.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과 ‘신과 함께: 인과 연’의 저승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다. 김자홍(차태현)과 김수홍(김동욱)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없이 장애인 어머니(예수정)를 돌봤다. 그럼에도 김자홍은 소방관으로 많은 사람을 구하고 순직했고, 김수홍은 그 몇 일 후 군복무 중 의문사했다. 의롭게 죽은 김자홍과 억울하게 죽은 김수홍은 저승에서 환생활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귀인’이다. 그러나 저승의 운영자들은 두 사람에게 귀인의 자격을 증명하도록 한다.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서 김자홍은 이승에서 수많은 선행을 했지만 몇 번의 잘못으로 인해 지옥에 갈 뻔했다. 그 중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온갖 일을 한 것을 저승의 판관들이 탐욕으로 몰아붙인 것도 있었다. ‘신과 함께: 인과 연’에서 저승의 재판을 받는 김수홍은 저승차사 강림(하정우)에게 ‘나태 지옥’에 갈 수도 있었다는 말을 듣는다. 김수홍이 8번만에 사법고시 1차 합격을 했다는 이유다. 김수홍은 혼자 15년동안 어머니를 모신 채 공부했지만, 저승에서 그의 인생은 ‘노오력’이 부족한 것이 된다.

동명의 원작 웹툰에서 김자홍은 평범하게 살다 죽었다. 그래도 그는 환생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환생의 기준이 영화와 다르기 때문이다. 김자홍은 아주 선하지는 않았어도 남에게 피해도 입히지 않은 ‘무골호인’이었다. 저승 변호사 진기한은 이 점을 부각시켜 김자홍의 환생 가능성을 높인다. 반면 영화에서 환생은 귀인, 그 중에서도 저승의 가혹한 재판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김자홍과 김수홍 형제가 귀인이 되는 과정은 이승에서 가난했던 사람이 ‘노오력’과 선의를 갖는 것은 물론, 이를 저승에서 증명까지 하는 일이다. 이승의 가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김수홍이 살던 철거촌에 남은 노인 허춘삼(남일우)은 손자 허현동(정지훈)을 키울 여력이 없다. 그가 더 많은 지원을 받으려면 주민센터 직원(성동일) 앞에서 장애인인척 해야 한다. 가난해서 주민센터를 찾았는데, 지원을 받으려면 더 불행하다는 것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이승에서는 정부가, 저승에서는 염라대왕(이정재)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경제적 지원과 환생을 놓고 당사자에게 그들의 불행 또는 도덕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한다. 완전히 가난해야, 완전히 착해야, 완전히 억울해야 귀인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김자홍마저 지옥에 갈 수도 있는 저승의 기준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귀인이 될 수 없다. 허현동처럼 언제 고아가 될지 모르는 아이에 대해 공무원이 해외 입양을 권하는 나라에서 정부가 지원할 의무가 있는 가난은 한정적이다. 원작이 ‘저승편’에서 김자홍을, ‘이승편’에서 철거에 나선 대학생의 입장도 조명한다면, 영화는 이승의 주요 인물들을 가난하며 선한 사람들로만 채운다. 그들만이 귀인이 될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옥에 가야 한다.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서 김자홍은 자신의 죄를 이승에서 용서 받았다는 이유로 지옥에 갈 위기를 면한다. 김자홍마저 용서 받아야 귀인이 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허춘삼의 집을 지키는 가택신인 성주신(마동석)은 용서의 의미를 직접 말한다. 1,000년동안 인간과 함께 산 그는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 허춘삼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마땅한 답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돈은 많이 드는데 돈을 벌 방법은 별로 없다. 그나마 있는 돈으로 투자한 이머징 마켓 펀드는 사채로 메꿔야 할 만큼 폭락했고, 비트코인이라도 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마저 든다. 그가 서울 시내를 보며 쏟아내는 불만은 가난한 사람에게 한국이 ‘헬조선’인 이유다. 그러나 성주신은 철거를 하러온 용역에게 공손하다. ‘공권력'이라는 이유다. 허춘삼을 저승에 데려가려고 온 저승차사 해원맥(주지훈)이 집에 찾아온 사채 업자를 혼내줄 때는 가만히 있던 그다. 성주신은 세상에 대한 불만은 가득하지만 허현동에게 해외 입양을 권하는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환생을 허락하는 귀인 제도의 문제도 짚지 않는다. 대신 그는 용서를 강조한다. 1,000년을 인간들과 살아보니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상황이 나쁘다는 시선. 모두 힘들게 살았고,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용서해야 한다. 완전히 결백한 사람은 없으므로. 결백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귀인’이다. 철저한 검증은 거쳐야 하지만.

원작은 환생을 통해 더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 그보다 조금은 더 착한 사람을 가렸다. 영화는 환생 가능한 귀인을 특별한 존재로 놓는다. 가난한 사람, 가난하면서도 선한 사람, 가난하면서 억울한 사람은 대다수의 사람들과 분리된다. 나머지는 모두 죄인이되, 용서 받는 죄인이다. ‘신과 함께’ 시리즈는 용서 받아야만 하는 특별한 사람들을 내세워 모두 용서 받는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의 악의, 더 나아가 부유층의 악행은 모두 지워진다. 강림, 해원맥, 이덕춘(김향기)의 과거사는 ‘신과 함께’가 제시하는 용서의 기준이다. 해원맥과 이덕춘은 강림 때문에 죽었고, 전생의 기억을 삭제당한 채 1,000년동안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김수홍의 재판 과정에서 강림의 진심을 몰래 듣고 그를 용서한다. 1,000년동안 자신의 죄를 기억한 채 죽은 이들을 만난 강림 역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직접 사과하지 않고, 지옥에 가지도 않은 채 용서 받았다.

세 차사의 전생은 이 영화의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강림의 아버지이자 고려의 대장군 강문직(김명곤)은 부모를 잃은 여진족 해원맥을 아들로 들인다. 강림은 그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다 해원맥을 국경의 험지로 내몬다. 해원맥은 실제로 강림의 명을 거역하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이덕춘을 돕는다. 누군가는 해원맥의 행동을 휴머니즘으로 이해할 것이다. 반면 누군가는 해원맥이 결국 자신을 거둬준 나라를 배반했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 바꿔 묻자면, 당신은 난민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또는 빈민의 복지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가. 그들이 받아들여지려면, 스스로 선한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신과 함께’ 시리즈는 약자의 선함을 칭송하되, 그들을 평범한 사람과 분리된 타자로 놓는다. 선함을 증명하지 못한 타자는 저승의 재판관에게, 주민센터 직원에게, 다수 민족에게 의심 받는다.

‘신과 함께: 죄와 벌’에 이어, ‘신과 함께: 인과 연’도 곧 천만 관객을 돌파할 예정이다. 연출을 맡은 김용화 감독은 3,4편의 제작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연속으로 돌파한 시리즈라는 의미다. 그런 작품이 지금 한국의 빈민을 소재로 삼고, 한국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불만을 읊으면서, 빈민을 특별하게 선한 이들로 치켜세운다. 그 점에서 ‘신과 함께’ 시리즈의 흥행은 지금 한국의 통계상 평균, 또는 중위값에 해당하는 이들의 의식에 대한 단서처럼 보인다. 다수가 소수, 또는 자신과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강림이 해원맥을 싫어한 데는 아버지가 물려준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죽은 직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같은 지역, 같은 계층, 또는 같은 민족이 아닌 이들을 받아들이면 그들이 언젠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의심. 동시에 그것이 편견일 수도 있다는 자각과 양심.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대한 동의, 하지만 빈민이 자신의 가난을 명확하게 입증해야 한다는 입장.

‘신과 함께’ 시리즈, 특히 ‘신과 함께: 인과 연’은 지금 한국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긍정, 타자에 대한 동정과 배척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은 뒤,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용서로 봉합한다. 가해자는 잘못을 알지만 이미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정말로 해탈한 것이나 다름 없는 선한 피해자는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것을 구전동화에 가까운 방식으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저승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맥락 없이 공룡을 끼워넣어도 상관 없을 만큼 볼거리일 뿐이고, 사건의 전개는 증언 또는 과거사의 구술이라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야기는 늘어지고, 연출은 촌스러우며, 저승을 묘사하는 CG는 여전히 조악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촌스럽지만 친절하고,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몰입할 소재를 건드리며, CG를 이용한 판타지와 사극의 액션이 교차한다. 영화 한 편에 한국인이 공감할 내용과 즐길 볼거리가 모두 있는 가성비를 보여준다. 이것이 한국이다.

김용화 감독은 두 작품의 각본도 썼다. 그는 아마도 지금 한국의 모든 감독 중 다수의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의 나이가 올해 47세고, ‘신과 함께’ 시리즈의 주요 배역이 거의 모두 40대 남자인 것은 그 자체로 ‘신과 함께’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원작에 있던 여성 캐릭터 조왕신의 역할은 성주신에게 합쳐졌고, 주요 배역 중 성인 여성은 노인을 제외하면 없다. 아버지가 죽었거나 도망친 세상에서 40대 남자만 사람들을 구하고, 억울하게 의문사를 당하고, 아버지의 자리를 잇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는 언제 누구에게 빼앗길지 모른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죄를 지었다. 이런 영화가 지금 한국의 전 연령, 계층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것을 지금 한국인의 평균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4년 전에는 올해 49세가 된 윤제균 감독이 아버지의 세대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던 ‘국제시장’을 연출했다. ‘국제시장’에서 ‘신과 함께’로의 변화.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의 변화. 그리고 아버지 세대에서 40대 남성으로의 변화. 이 과정에서 여성, 빈민, 난민 등 소수자는 모두 타자로 여겨진다. 이 변화가 그래도 나아진 것일까, 아니면 또다른 문제의 시작일까.

‘신과 함께: 인과 연’은 막바지에 ‘진기한’ 성격을 가진 변호사의 등장을 예고한다. 원작대로라면, 저승 변호사의 등장은 저승이 완전무결한 선인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죄인들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점에서 ‘신과 함께’ 3편이 궁금하다. 원작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사용한 상황에서 김용화 감독은 앞의 두 편 보다 더 자신의 입장을 작품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 과연 그는 가난한 자의, 또는 소수자에게 선함을 요구하거나 동정하는 대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관객들은 다시 한 번 ‘신과 함께’를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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