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앱으로 남자 만나기

2018.08.29
어느 날, 친한 친구 한 명이 조용히 털어놨다. “사실 내 남자친구, 소개팅 앱에서 만났어. 솔직하게 얘기하기가 좀 그래서 그냥 소개팅이라고 했어.” 이러나저러나 소개팅이라는 형식을 빌려 만났으니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험난한 시간이 계속됐다.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채팅으로 만난 남성들 중에서는 대뜸 카카오톡 아이디를 묻거나, 당장 만나자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마음만 원한다면 거짓말이죠.”라며 황당한 멘트로 원나잇 제안을 하는 사람까지. 온라인 동호회처럼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얼굴과 신체 정보, 나열된 취향만으로 연인을 만들 수 있다는 편리함 뒤에 가려진 것들이 있다. 지금 SNS, 유튜브 등을 통해 끊임없이 광고 중인 여러 개의 소개팅 앱 중 하나를 설치해 2주 동안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하루에 수십 명씩 소개를 받았다. 여성이 소개팅 앱으로 연인을 만나려고 하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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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에 뭐라고 적었길래

처음 앱을 설치하니 프로필을 설정하라는 안내가 떴다. 최대 여섯 장까지 가능하지만, 각기 다른 스타일링으로 멋을 낸 세 장의 사진만을 업로드했다. 너무 많은 사진을 올려두면 오히려 단점만 부각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진에서는 안 보이던 뾰루지의 흔적이 세 번째 사진에서는 보이기에 얼른 보정 어플을 켜서 여드름 지우개 기능을 활용해 다시 올렸다. 닉네임과 생일, 혈액형, 흡연 및 음주 여부, 종교까지 입력하고 나서 완성된 프로필을 보니 나이와 별자리까지 자동으로 정갈하게 입력됐다. 다음으로는 나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지 선택할 차례인데, 웬걸. 매력 포인트에 당황스런 항목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는 아이즈에서 2016년에 진행했던 ‘하나도_기쁘지_않습니다’캠페인에서 지적했던 항목이 들어가 있다. ‘자취해요.’ 이 외에도 여성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는 가슴 크기에 관한 것 빼고 모든 게 있다. ‘큰 눈’, ‘손이 예뻐요’, ‘보조개’ 같은 항목은 기본이고 ‘엉덩이가 예뻐요’, ‘골반 미녀’, ‘다리가 예뻐요’처럼 마치 여성의 몸 부위를 분절해서 설명하듯이 자세하다. 다행인 것은 ‘뛰어난 커리어’, ‘섹시한 두뇌’, ‘시사에 밝아요’, ‘경제력’과 같은 항목도 나름 구색 맞추기 형태로 들어 있다는 점? 제시된 옵션 안에서는 ‘목소리가 좋아요’ 외에 도무지 선택할 게 없어서 별도로 입력했다. ‘눈웃음.’ 쓰고 나니 좀 민망해졌다. 원래 이런 건 만나고 나서 상대가 발견해줘야 제대로 자랑할 수 있는 건데. 이어서 키와 몸매를 입력했다. 참고로 몸매는 늘씬, 마른, 보통, 통통 등의 예시 중에 필수로 선택해야 한다. 앱에서 자신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평가한 나의 레벨은 ‘실버’였다. ‘다이아몬드’까지는 한참 멀었다.

# 프로필 평가하기
별 다섯 개는 10점 만점, 별 한 개는 2점이다.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나오는 남성들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만 보고 별점을 매겼다. 하염없이 누르고 있다 보니 대학생 때 술집이나 동아리에서 남자 선배들이 여자 후배들의 외모와 나이를 가지고 신나게 떠들던 장면이 생각났다. 외모와 직업 같은 몇 가지 정보만으로 이 사람에게 별점을 매긴다는 게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싶다가도, 과거에 나를 보면서 “살만 빼면 예쁠 것 같아.”라고 해맑게 말하던 동기 남자애가 떠올라 무심코 분노를 느끼며 별점을 매겨댔다. 아마 이렇게 꼬박꼬박 새로운 평가 대상이 뜰 때마다 접속하면 하루에 백여 명도 넘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간 정도만 앱을 비워도 평가 대상이 37명~40명씩 뜨기 때문이다. 그중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호감을 보내면 된다. 상대가 호감을 받기를 선택하면 연결되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일단은 나이, 직업, 외모 등이 모두 제각각인 남성들을 몇 명 골라 여러 명에게 호감을 보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소개팅인가?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에 ‘젬’이 다 떨어졌다. 마치 게임처럼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한다. 참고로 호감을 보내는 데에는 10개, 상대에게 말을 걸 때는 20개가 필요하다. 이 ‘젬’은 프로필 평가를 많이 하면 할수록 쌓인다. 돈 안 들이려면 프로필 평가를 해서 상대의 점수를 매겨야만 한다는 소리다. 하루 만에 레벨이 ‘골드’로 올랐다. 다들 ‘젬’ 버느라 애쓰나 보다.

# 프로필 변경하기
즉흥적인 만남을 원한다는 20대 후반의 남성들에게 호감이 날아왔다. 자기 소개에 ‘원나잇 안 해요.’라는 문구를 써두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레벨이 실버로 떨어졌다. 그런데 정작 호감을 표하는 남성의 숫자는 훨씬 늘었다. 줄이어 ‘A님이 당신을 좋아해요’라는 알림이 뜨고, 바로바로 들어가서 확인할 때마다 어떤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47세 남성, 42세, 40세, 37세.. 나와 띠동갑을 한참 넘은 남성이 호감을 표한 것을 보고서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내 나이는 1988년생, 31세다. 31세는 남성들에게 어떤 나이로 비춰지고 있는 걸까. 20대 중후반의 남성들에게는 진지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만나기에는 부담스러운 나이이고, 30대 중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의 남성들에게는 “원나잇 안” 하는 조신하고 안정적인 나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틀 정도를 기다렸다가, 의도적으로 프로필에서 ‘원나잇 안 해요.’를 지웠다. 놀랍게도 반나절 정도 지난 후에 나는 평균 6.5점을 넘기며 다이아몬드 레벨에 진입했다.

# 관계 정리하기
S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27세 남성 A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하자마자 자신의 의사 가운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앱이라서 거짓말한다고 생각하실까 봐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는 네이버에 치면 내 이름으로 된 기사가 많이 뜬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SNS 아이디를 알려주며 SNS 상으로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먼저 SNS 팔로우를 하고 낮에는 퇴근했다며 혼자 스타벅스에 앉아 음료를 시킨 사진을 보내는 등 여러 가지 행동을 하던 그는 밤이 되자 갑자기 카카오톡 대화를 중단하고 SNS 팔로우를 끊음으로써 나와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소개팅 앱의 특성상 더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서로 대화가 끊길 수는 있다. 그러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 사이에서는 나올 수 없는 소위 ‘비매너’가 어떤 것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 외에도 자신의 매력으로 ‘예의가 바르다’, ‘섹시한 두뇌’, ‘친절하다’ 등을 내세운 경찰, 일반 행정 공무원, 대기업 사원 등과 대화를 해보았다. 단 한 명도 “잘되어가는 분이 생겨서 이제 연락을 못 합니다.”라고 명쾌하게 관계를 정리하며 대화를 끝마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취미 공유하기
또 다른 남성은 대형 포털에 재직 중이었다. 넷플릭스를 자주 본다기에 잘 맞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았는데, 그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유병재 최근에 올라온 스탠드업 코미디 보셨어요?ㅋㅋ” 잠시 멈칫했다. 앨리 웡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재미있어하는 여자와 유병재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재미있어하는 남자라니. 이 사람과 나는 어울릴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또 다른 남성은 물었다. “서핑 좋아하세요?” 그의 프로필에는 자신의 몸을 드러낸 사진이 너무 많았다. 사실 그를 제외하고도 자신의 탄탄한 근육과 하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을 올려두는 남성이 한둘이 아니어서 가끔은 접속할 때마다 민망할 정도였다. 관리자의 승인을 거쳐 얼굴이 명확하게 나온 사진만 업로드가 가능하다는데, 어떤 남성의 사진은 얼굴이 너무 조막만 하고 몸이 사진의 2/3를 차지했다. 다들 눈도 좋다. 서핑, 수상스키처럼 야외 레저 활동을 즐기는 남성들에게는 독서와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대다수는 밋밋한 대화를 이어가다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점점 진이 빠졌다. 얼굴과 몸매에 별점을 매기는 것도, 갑자기 마음이 바뀌면 뚝뚝 끊어지는 대화를 또 다른 사람을 골라서 이어가는 것도 힘겨웠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건 정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소개팅이 맞나? 이걸로 사귀고, 마침내 결혼까지 했다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지루한 별점 매기기를 반복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 연인을 고른다는 것
“기자 처음 봐요.” “기자세요? 신기하네요.”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시작해서 끝은 좀 달랐다. “기자시면 바쁘시지 않아요?”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락이 잘 되는 사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원했고, 거기서 나의 직업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비춰지지 않았다. 또한 고학력자 남성들 중에 나와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남성들은 내가 생각했던 연인의 나이보다 연령대가 훨씬 높은 사람들뿐이었다. 뽀얗게 보정을 한 사진을 올렸을 때가 훨씬 레벨이 높았고, 화장을 진하게 한 사진은 한 장 정도 포함시켜야 점수가 올랐다. 그리고 나 또한 남성들을 보면서 턱선부터 콧대, 눈 크기, 피부, 키까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서 별점을 매겨야지만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향해 호감을 보내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앱을 통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에 빠진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말한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소개팅 앱의 자기소개란에 가장 많이 씌어 있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가볍게 생각하고 찔러보시는 분들 사절”, “앱으로 만났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진 몇 장과 (실제인지 아닌지도 모를) 개인정보 몇 가지로 나와 어울리는 사람인지 결정하려면 다리 꼬고 앉아서, 혹은 침대에 누워서 슥슥 별점을 매기는 정도의 가벼움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얼른 좋은 분 만나서 함께 이 앱 지우고 싶네요.” ‘좋은 분’을 만나는 게 아니라 골라야 하는 이 앱에서, 나와 어울리는 남자의 데이터베이스를 제공받는 대가는 씁쓸하다. 모두 이런 기분을 느끼면서 소개팅 앱을 하는 걸까. 탈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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