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몰아보기

백설희의 ‘옹정황제의 연인’, 서밤의 ‘제인 더 버진’, 박진영의 ‘김씨네 편의점’

2018.10.05
옹정황제의 여인 (왓챠플레이)

원제는 ‘후궁견환전’(后宫甄嬛传)으로, 2011년에 방영된 중국 드라마다. 보기 드문 여성 중심의 사극으로, ‘보보경심’ 등과 함께 국내에 현대 중국 드라마를 널리 알린 작품이다. 7년 전 드라마지만 높은 퀄리티의 미장센과 스토리텔링 때문에 아직까지도 열렬한 팬층이 있다. 청조 옹정제가 즉위한 뒤 황실에 입궁한 후궁 견환이 음모와 암투, 배신 등 여러 일을 겪으며 살아남아 마침내 황태후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그렸다. 개성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들이 매 화 서스펜스 넘치는 스토리라인 속에 살아 숨 쉰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새로운 복선이 보이고, 지루하게 늘어지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총 76화란 긴 화수에도 불구하고 앉은 자리에서 홀린 듯 정주행이 가능하다.

주요 인물이 전부 여성이며 그들을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전부 남성 권력에 기대어 살아간다.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면 이곳저곳에서 냉대를 받고, 아무리 득세한들 황자를 낳지 못하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자신의 죄가 아닌 아버지의 죄로 한순간에 내쳐지고, 황제의 기분을 거슬렀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냉궁에 갇힌다. 주인공인 견환에게 초점을 맞춘 ‘후궁견환전’이란 제목이, 국내에 들어오면서는 황제에 초점을 맞춘 ‘옹정황제의 여인’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이런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화려하지만 텅 비어 있는 황궁에서 후궁들은 꽃이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러나 주인공인 견환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은 꽃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꽃인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시를 다듬어야 한다. 견환은 최후의 승리자로 남기 위해서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잃는다. 결국 견환은 황태후로 즉위하지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그 얼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애가 묻어난다.

당시 후궁들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 여성들 역시 남성 권력 안에서 꽃으로 남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나는 견환에게서, 화비에게서, 안릉용에게서 나 자신을 본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이것이 내가 ‘후궁견환전’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다. 아마도 ‘후궁견환전’을 좋아하는 많은 여성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글. 백설희(칼럼니스트)

제인 더 버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스크롤을 내리다 분홍색 배경에 당황한 표정의 여자 주인공이 임신 테스터를 들고 있는 포스터를 몇 번이고 무심히 지나쳤다. 뜻밖의 임신을 다룬 그저 그런 드라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오해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영업해본다.

혼전순결주의자인 제인은 어느 날 본인이 임신했다는 걸 발견한다. 알고 보니 산부인과 의사의 실수로 검진이 아닌 인공수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정자의 주인은 호텔의 경영자이자 문제의 산부인과 의사의 남동생 라파엘. 고환암에 걸려서 냉동시켜둔 유일한 정자를 그의 아내가 몰래 사용하려다가 의사의 실수로 제인이 임신을 하게 된 것.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복잡하고 자극적이라 생각하는가? 이게 단 1화의 스토리이다. ‘제인 더 버진’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건 전개를 텔레노벨라답게 아주 경쾌하고 스피디한 속도감으로 풀어낸다.

살사 소스처럼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스토리에 홀려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제인을 비롯한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들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모든 주요 인물이 여성이며, 큰 일도 작은 일도, 성장도 모두 여성이 한다. 제인은 끊임없이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우리가 기억하게 되는 것은 제인이 엄마로, 작가로, 그리고 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제인의 임신, 연애사, 의문스런 살인사건을 숨 가쁘게 전개하면서도 낙태, 종교, 이민자, 싱글맘, 페미니즘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점도 좋다. 이렇게 불편함 없이 술술 넘어가는 오락 드라마라니! 능청스런 목소리의 진행자를 따라 몇 편을 끊지 못하고 보더라도 너무 죄책감 갖지 말기를. 여기 그런 사람 하나 더 있으니.
글. 서밤 (‘나에게 다정한 하루’ 작가)

김씨네 편의점 (넷플릭스)

얼마 전 개봉한 존 조 주연의 영화 ‘서치’나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 등 동양인 배우들이 주연으로 활약하는 영화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어도 늘 ‘어디서 왔냐(Where are you from)’는 질문을 받고, 미국인이라기보다 주변인으로 취급되곤 하는 아시안계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아시안 또한 엄연한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외치고 싶은 답답함이 있었을 것 같다. 백인들이 등장하는 데에 별다른 이유가 필요치 않듯, 아시안이 스크린에 등장할 때도 굳이 ‘무술가’, ‘닌자’ 같은 설정 없이 하나의 인간으로 나오는 영화들이 반가운 이유다. 사회의 주변이든 중심이든 이 사회에는 아시안이 ‘분명한 구성원’으로 존재한다고, ‘우리는 분명히 여기에 있다’고 하는 메시지가 개인적으로도 와 닿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시안을 대변하는 서사가 흔치 않은 가운데, 얼마 전 넷플릭스에 들어온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이 눈길을 끈다. 이 드라마는 한국인 이민자 가정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는다. 이민 1세대인 부모와 2세대인 자녀, 이들이 이민자로서의 삶을 꾸려온 수퍼마켓을 배경으로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세대 차이, 바보 같은 이야기, 다툼과 화해 등을 때론 웃음으로, 때론 눈물로 담아낸다. 한국인 부모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조금 과장된 부분도 있는 듯하지만, 이 드라마는 한국 가정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 가정을 그린 것이므로 그들의 시선은 나의 시선과 다를 수밖에 없다. 신선한 소재라는 느낌과 동시에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이민자 가정을 심도 있게 다룬 드라마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했다.

주연 배우 폴 선형 리(Paul Sun-Hyung Lee)가 캐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면 변화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주목받길 바라본다.
글. 박진영(‘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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