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 Credit 아이즈(ize)
  • 입력 2017.01.02 16:40
  • 댓글 0

얼빠진 나라

지금 한국에서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블랙홀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최 씨가 국정연설에까지 개입한 것을 대통령이 일부 시인하고 사과를 하면서부터, 그의 이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모든 뉴스를 빨아들였으며, 모든 관심을 빨아들였으며, 콘크리트 같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까지 빨아들였다. 이슈의 출발점이었던 미르 재단의 부정 축재뿐 아니라, 개성공단 폐쇄, 평창 동계올림픽 비리, 한진해운 정리 등 지난 몇 년간 국가적으로 가장 굵직한 이슈들까지 최순실과 연결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대한민국의 수많은 부조리도 그를 향해 소급해 들어갔다. 모든 것을 빨아들인 자리에는 정서적 진공이 남았다. 한창수 고려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현재 국민들의 감정에 대해 “학문적으로 보기보다는, 지금은 사실 황당한 멘붕 상태”이며 “화가 나서 어떻게 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던 이들에게조차 작금의 상황에선 또 다른 상실감을 느낀다. 최소한의 합리주의적 언어로도 번역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합법적으로 뽑힌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장악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오랜 시간 민주화 운동으로 꽤 견고하게 쌓아왔다고 믿어왔던 근대적 이성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경험을 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나라에 난 거대한 상처가 아니라 어둠과 허무만 남긴 거대한 구멍이다.
저작권자 © 아이즈(iz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