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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redit 정명화(칼럼니스트)
  • 입력 2024.03.22 16:24
  • 수정 2024.03.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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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장벽 하나둘 넘을수록 배가되는 재미와 몰입도, '닭강정'

황당한데 미스터리하면서 뭉클까지 한 기묘한 SF 코미디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이병헌 감독의 작품들을 일명 '말맛 코미디'라고 한다. 뜬금포에 엉뚱한 유머로 새로운 코미디 장르를 개척한 이병헌 감독은 연출 이전에 충무로의 각색가로 이름을 날렸다. 여러 감독들과의 작업에서 특유의 감칠맛도는 '말맛'을 선보여온 그는 본격적인 연출의 길로 접어들며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힘내세요 병헌씨', '스물'로 슬금슬금 그의 유머에 물들게 하더니 '극한직업'으로 1000만 감독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대중을 '이병헌표 말맛'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1000만 감독으로 올라선 그가 내놓은 새 작품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닭강정'이다. 사랑하는 딸, 짝사랑의 여인이 순식간에 닭강정으로 변했다는 황당무계한 스토리를 무려 10화의 에피소드로 연출했다. '지금까지 이런 드라마는 없었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전혀 새로운 소재와 연기, 연출이 혼합된 기상천외한 SF 미스터리 코믹 휴먼 사극 액션물을 내놨다. 

어디로 튈지 모를, 예측불허의 '닭강정'은 이병헌 감독이 '하고 싶은 것 다 해 본' 듯 온갖 장르와 설정, 유머가 흘러넘치는 작품이다. 전작에서 호흡을 이룬 류승룡, 안재홍, 양현민을 비롯해 김유정, 정호연, 김남희, 김태훈. 조현재 등이 출연해 '극한 유머'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황당한 설정과 기가 막히는 전개, 뜬금없는 대사에도 불구하고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게 임한 배우들의 연기는 '닭강정'을 중도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다.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딸을 낳고 세상을 떠난 아내를 대신해 어린 딸 민아(김유정)를 혼자 힘으로 길러온 최선만(류승룡). 최선만은 사원 고백중(안재홍과 김환동(김남희), 두 명의 직원만 있는 작은 회사 '모든기계'를 운영 중이다. 어느날 회사로 배달된 의문의 기계에 들어간 딸 민아가 닭강정으로 변해버리자 선만과 민아를 좋아하는 백중은 민아를 다시 돌려놓을 방법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총 10화로 구성된 '닭강정'은 1편의 에피소드가 약 30여분으로 비교적 짧은 분량이나 전반부에는 보는 이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박지독 작가의 동명 웹툰을 비교적 원작과 유사하게 영상화했으나 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했지만, 그 이유도 해결방법도 알지 못하는 초반은 보는 이에 따라 불친절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민아를 다시 돌려놓을 방법을 찾기 위해 이리저러 애를 쓰지만 계속되는 난관과 장애에 부딪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중도하차의 유혹이 몰려오기도 한다.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그러나 이 고비(?)를 잘 넘긴다면, 작품은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웃음과 감동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시큰둥하고 슬픈 얼굴로 대박 맛집 '백석닭강정'을 꾸려가진 네명의 직원들이 '왜 자꾸 장사가 잘 되는건데?'라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미치광이 과학자로 보였던 '유인원 박사'(유승목)이 왜 '멜로가 체질'의 대사를 줄줄 외울 지경이 됐는지, 모든기계 사무실 앞에 이 문제의 기계를 내려놓고 욕을 퍼붓던 양반닭강정 사장(양현민)은 왜 화가 많은 사람이 됐는지 등 등장인물들의 전사도 하나둘 공개되며 장난같던 이야기에 현실감을 입혀준다. 

'닭강정'은 후반으로 치달으며 미스터리와 SF, 사극의 온갖 장르의 혼합과 200여년의 시간을 오가는 이야기로 몰입감을 더한다. 극의 백미는 주요인물들이 모두 유박사의 외딴 연구실에 모여 대치하는 상황이다. 각각의 무기를 내세워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로 대치하는 등장인물들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웃음의 '대환장파티'를 만들어낸다. 차곡차곡 쌓여온 웃음과 실소, 유머의 시너지가 폭발하면서 '닭강정'의 후반은 폭소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리고 황당하기만 했던 '닭강정'의 이야기는 먼 우주 어딘가로 날아가며 인간애의 진한 여운을 남긴다. '닭강정'은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기에는 허들이 높은 작품이다. 그러나 실없는 농담과 엉뚱한 이야기에 약간의 인내를 발휘할 수 있다면, 그동안 보아온 어떤 작품과도 다른 기발한 웃음과 은은한 잔향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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